부흐빈더의 야금술, 플레트네프의 연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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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루돌프 부흐빈더(왼쪽, ⓒKYB), 피아니스트 미하일 플레트네프(오른쪽, ⓒ Kawai Germany)

어느덧 2019년의 절반이 지났다. 오늘따라 “시간은 금이다”라는 격언을 실감한다. 그렇지만 올해 상반기 클래식 공연계를 되돌아보면, 모든 순간이 빛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 관객들 사이에서 급격히 오른 공연비에 따른 불만이 제기되었다. 관객은 투자한 돈과 시간만큼 감동을 얻길 원했지만, 이를 만족시키는 공연은 흔치 않았다. 그래서 더 값진 두 피아니스트의 무대가 있었다.

지난 5월 순회공연 <루돌프 부흐빈더 & 베토벤>이 열렸다. 이 공연에 앞서 부흐빈더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악보를 39판으로 소장하고 있다”라며 “최근에는 리스트 판으로 베토벤이 의도한 운지법을 연구했다”라고 밝혔다. 이러한 부흐빈더의 음악적 접근법은 야금술에 비유할 수 있다. 악보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걸러내며 작곡가의 언어를 그대로 살리고자 한다.

반면 플레트네프의 피아니즘은 연금술처럼 펼쳐진다. 이를테면 타고난 감각으로 악보에 적히지 않은 부분까지 뒤섞어 새로운 아름다움을 끌어낸다. 이러한 모습은 6월 <미하일 플레트네프 피아노 리사이틀>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날 플레트네프는 베토벤과 리스트를 자신의 호흡으로 노래하며 악보가 허용하는 궁극의 한계선까지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특히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3번’을 놓고 부흐빈더와 플레트네프의 차이를 더 체감했다. 우선 부흐빈더는 악보에서 추출한 베토벤의 뉘앙스를 바탕으로 무대에서 순도 높은 음형을 만들어냈다. 반면 플레트네프는 미시적으로 악보를 따르면서도 전체 뉘앙스를 자신의 목소리로 바꿔 놓고야 말았다. 전자는 매개자로서 전통적인 연주자의 역할에 충실하고, 후자는 연주자의 존재를 능동적으로 재정의하고 있다. 즉 부흐빈더는 피아니즘의 중심을 지키고 플레트네프는 그 영역을 확장한다.

부흐빈더와 플레트네프의 간극은 음악적인 스펙트럼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그렇지만 어느 접근법이 더 가치가 있다고 말하기가 어렵다. 다만 피아니즘을 관통하는 두 철학은 결국, 관객에게 빛나는 시간을 체험케 한다는 점에서 궤를 같이한다. 야금술이든 연금술이든 금만 잘 만들어내면 되듯이 표를 산 관객은 그저 무대에서 아름다운 음악이 흐르기를 바랄 뿐이다. 지난 두 거장의 연주는 그 시간을 황금같이 느껴지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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