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주의자가 그린 이상을 보다, 경기필 신년음악회

- 2019 경기필 신년음악회 (2019.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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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8년 12월 22일에 베토벤은 교향곡 5번과 6번을 동시에 공개한다. 같은 무대에서 초연한 두 작품은 판이한 분위기를 지녔다. 우선 교향곡 6번은 “전원”이란 제목에서 드러나듯 자연의 은유를 담은 작품이다. 반면 교향곡 5번은 아시아권에서 ‘운명’이란 별칭이 붙었을 만큼 한 인간의 의지가 느껴진다고 평가받는다.

베토벤 교향곡 5번과 6번은 중기 작품에 속한다. 이 무렵에 베토벤은 선배 작곡가의 영향에서 벗어나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한다. 또한, 여러 기록을 종합해보면 베토벤이 청력을 상실하는 과정에 있었다. 즉 베토벤은 왕성한 창작을 하면서도 점차 건강을 잃어갈 시기에 두 작품이 만들어졌다.

베토벤은 창작과 건강이 반비례하는 상황에서 두 가지 모습을 보여준다. 작품 활동 도중에 산책하거나 근교로 떠나 지친 마음을 자연에서 달래곤 했다. 이러한 면모는 교향곡 6번에서 잘 나타난다. 한편으로 베토벤은 수익 모델을 비롯한 여러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이러한 모습은 교향곡 5번에서 느낄 수 있다.

어쩌면 교향곡 5번과 6번을 연이어 듣는다는 것은, 현실과 이상 사이에 놓인 한 인간을 느끼는 일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거울처럼 다가오는 무대가 있었다.

현실을 수용하고 이상을 펼치다
마시모 자네티의 베토벤

지난 11일 경기도문화의전당에서 <2019 경기필 신년음악회>가 열렸다. 이날 지휘자 마시모 자네티가 이끄는 경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새해 첫 무대에 올랐다. 공연 프로그램인 베토벤 교향곡 5번과 6번은 원전에 가까우면서도 독창적인 연주를 선보였다.

베토벤 교향곡 6번, 베렌라이터 악보

공연 전에 밝힌 대로 이날은 ‘베렌라이터(Bärenreiter)’ 판본을 기초로 연주했다. 지난 1997년 베렌라이터에서 출간한 베토벤 교향곡 악보는 원전에 가장 가깝다고 평가받는다. 베렌라이터 편집 목적이 베토벤의 의도를 살리는데 집중한 데다가 기존 악보에서 발견한 오류나 후대 편집자의 자의적인 해석을 최대한 배제했다.

경기 필하모닉이 원전 연주를 추구한 점은 템포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베렌라이터 악보에는 베토벤이 지시한 메트로놈 속도를 주석에 달아 표기했다. 물론 지시 템포가 비현실적인 부분이 있어서 완벽히 지키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이날 경기 필하모닉은 베토벤의 지시 템포에 거의 근접한 연주를 펼쳤다.

더불어 마시모 자네티는 악보에 적힌 기호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구현했다. 또한, 비브라토 사용을 줄이면서 작곡 당시 소리에 가깝게 살려냈다. 이렇게 작곡가의 본래 의도는 수용한 점은 1990년대 말부터 자리를 잡은 원전 연주 열풍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지만 마시모 자네티는 악보의 틀을 유지하면서 자신이 추구하는 음악을 명확히 선보였다.

베토벤 교향곡 6번은 전반적으로 느슨한 전개가 이어진다. 특히 1악장에서 70회가 넘게 반복되는 음형이 나와서 단조롭게 다가올 우려가 있다. 반면 마시모 자네티는 구간마다 변화를 줘서 곡에서 생동감을 찾아냈다. 오디오의 볼륨 다이얼을 확 올렸다 내릴 때처럼 다이내믹을 활용해서 또 다른 박자감을 만들었다. 여기에 악장에 따라 약음기를 쓰거나 운궁법을 독특하게 활용해서 아티큘레이션에 개성을 부여했다.

미시적인 접근만을 한 것은 아니었다. 베토벤 교향곡 5번은 같은 셈여림 기호라도 후반부로 갈수록 음량 기준을 다르게 잡았다. 빠른 템포로 간결하게 진행하면서도 긴 호흡으로 고조되는 분위기를 자아냈다. 특히 3악장에서 4악장으로 넘어가며 단조에서 장조로 바뀌는 지점이나, 4악장에서 환희를 표현한 듯한 부분에선 신년음악회 성격에 맞게 힘을 주었다.

다소 즉흥적인 부분은 있었지만, 마시모 자네티는 젊은 악단인 경기 필하모닉에 맞게 활기 넘치는 연주를 이끌었다. 또한, 금관 파트를 비롯한 현재 악단의 한계를 인지하고 연주 중에 무리한 요구를 자제하는 듯한 인상이었다. 오늘의 현실을 수용하면서 이상을 겨냥한 무대애서 올해 경기 필하모닉의 성장을 가늠할 수 있었다.

멈추지 않는 성장곡선을 그리다
경기 필하모닉의 행보

지난해 경기필은 얍 판 츠베덴, 니콜라이 즈나이더, 리오 샴바달 등 세계적인 지휘자와 한 무대에 오르며 다양한 잠재성을 입증했다. 또한, 마시모 자네티가 예술감독으로 부임하면서 방향을 잡고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지난 신년음악회를 시작으로 올해 경기 필하모닉은 ‘마스터스 시리즈’와 함께 청소년과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기획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또한, 4월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에 참여할 뿐만 아니라 베토벤 교향곡 전곡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신년음악회에서 선보인 교향곡 5번과 6번을 시작으로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맞는 2020년까지 나머지 교향곡을 모두 선보일 예정이다.

마시모 자네티는 왕성히 활동할 시기에 경기 필하모닉의 지휘봉을 잡았다. 여기에 평균 연령이 낮은 악단 분위기가 잘 맞물려 돌아가고 있다. 올해 마시모 자네티가 이끄는 경기 필하모닉이 어떤 음악을 들려줄지 공연장에서 직접 확인하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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