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임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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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임주희 / 대관령음악제 제공
피아니스트 임주희는 이성과 무의식의 중간 지점을 파고들며 환상적인 풍경을 불러일으킨다. 임주희가 피아노 건반을 두들길 때마다 작곡가의 청각적 언어가 시각적인 은유로 뒤바뀌곤 한다. 그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그만의 음악 세계가 있다.
글 | 기획장 이상권

 

지금까지 많은 연주자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한 분야에서 이름을 날린 만큼 모두가 대단했지만, 단번에 ‘천재’라고 느낀 경우는 피아니스트는 임주희가 유일했다. 음악적인 재능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임주희의 사고방식과 순간적인 응용력은 초고지능자의 전형적인 특성을 그대로 나타냈다.

물론 임주희가 완성된 연주자라는 뜻은 아니다. 임주희는 성장기를 홈스쿨링을 통해서 보냈기 때문에 제도 교육에서 다듬어질 부분은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내 이름을 걸고 임주희가 10년 안에 대단한 경지에 올라설 것을 주장한다. 독자에게 임주희의 성장을 지켜보기를 권한다.

피아니스트 임주희에겐 피아노란 어떤 존재인가요?

어렸을 적에는 엄마와 함께 놀듯이 피아노 건반을 두드렸어요. 늘 그렇게 피아노가 저를 친구처럼 맞아주었죠. 성장기를 피아노와 함께 보내면서 저 자신이 연주에서 점점 드러나기 시작했어요. 이제는 피아노가 저를 비추는 거울이 된 셈이죠.

부모님께서 음악을 전공하셨나요?

어머니께서 음악을 전공하시고 피아노학원을 운영하세요. 덕분에 집안에서 제가 피아노 연주에 재능이 있다는 걸 일찍 발견할 수 있었어요.

부모님께선 어린 자녀에게서 어떻게 음악적 재능을 발견했나요?

제가 첫 돌을 맞기 전 일이에요. 당시에 제가 디즈니 애니메이션 <인어공주>의 멜로디를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흥얼거렸대요. 어머니께서는 제 음감이 남들보다 뛰어나다는 걸 아셨던 거죠. 생후 30개월이 지날 무렵에 제 손가락에 힘이 붙자 바로 피아노를 가르쳐주셨어요.

일찍이 신동으로 유명해졌지만, 대외 활동을 꾸준히 한편은 아닙니다. 일부러 내실을 다지는 시간을 보냈나요?

초등학교 2학년 때 예원콩쿨에서 우승한 뒤로 콩쿠르에 나가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제 또래 친구들이 경험하기 힘든 연주를 많이 했어요. 콩쿠르나 학교에 연연하지 않아서 대외 활동이 적다고 느끼실 수도 있어요.

유학을 결심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학교는 정해진 곳이 있나요?

커티스음악원 입학 오디션을 준비하고 있어요. 모든 학생에게 전액 장학금이 주어질 뿐만 아니라 재학 중에 스타인웨이 그랜드 피아노까지 무상으로 제공되거든요.

피아노 연습 외에는 주로 어떻게 시간을 보내나요?

초등학교 졸업 후에 홈스쿨링을 했어요.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보다는 시간을 활용하기에는 유리했죠. 피아노 연습 외에 정말로 다양한 것들을 즐기고 있어요.

부모님께서 먼저 시켜서 한 일은 없어요. 이를테면 아버지와 함께 조조할인으로 영화를 즐겨봐요. 이렇게 본 영화에서 흥미 있는 부분이 나오면 저 스스로 관련 내용을 찾아 공부하죠.

영화를 통한 자율학습을 한 셈이네요. 더 설명해 줄 수 있나요?

재미있게 본 판타지 영화의 주요 모티브가 북유럽 신화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영화와 직접 관련된 내용부터 북유럽 신화를 공부했어요. 또한, 북유럽 신화를 비롯한 다양한 유럽 신화와 설화를 비교 분석하게 되거든요.

여러 신화를 어떻게 비교 분석합니까?

예를 들어 북유럽 신화에는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에 해당하는 전지전능한 신은 등장하지 않아요. 그렇지만 제우스와 비슷한 면을 지닌 토르가 나오죠. 두 신이 동등한 가치를 지니지는 않지만, 신화 내러티브에서 기능적으로 유사한 연결 고리가 있거든요. 이렇게 비교 분석을 통해서 신화가 어떻게 형성되고 인간은 왜 이런 상상을 하는지 질문을 던지면서 공부를 이어가죠.

유럽 문화를 공부한다는 것은 클래식 음악의 뿌리를 찾는 일과 다르지 않아요. 복합적으로 유럽의 문화와 역사를 탐구하는 과정이 음악 공부에도 많은 도움이 되죠.

작품을 공부할 때도 비슷한 방식으로 파고드나요?

협주곡은 오케스트라 총보 기준으로 일주일이면 소화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악보가 다 말해주진 않잖아요. 작곡가와 시대상은 계속해서 공부해야죠.

혼자 공부하는 시간이 많다 보니까, 작품과 관련된 내용을 다방면으로 찾아서 공부했어요. 예를 들어 바흐의 악보에는 지시어가 없어서 음악적 상상력을 발휘해야 하는 지점이 많아요. 그래서 악보를 보기 전에 바흐에 관한 서적부터 관련 정보를 다양하게 공부해요.

악보 자체는 빨리 보지만, 곡을 공부하는 시간은 긴 편이군요?

처음에는 이런 방식이 느릴 수는 있어요. 그렇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지적 생태계가 점점 더 풍성해져요. 이 방식이 재밌기도 하고, 상상을 더 크고 세밀하게 만들어갈 수 있어요.

악보를 기억할 때 기호적으로 흡수하나요? 이미지로 받아들이나요?

모든 내용을 사진을 찍듯이 이미지로 기억해요. 먼저 머릿속에 이미지를 넣고 나중에 확대하듯이 내용을 떠올리죠. 기억 자체는 빠르긴 빠르지만, 처음부터 한 자 한 자 의미를 음미하면서 읽지는 않아요.

해상도가 낮게 기억이 되어서 그 내용을 읽지 못할 때도 있죠?

맞아요. (웃음)

책 몇 페이지, 몇 단락에 있는 건 이미지로 남아 있는데, 글을 읽어낼 정도로 뚜렷하진 않을 때가 있어요. 그래서 처음 머릿속에 넣을 때 잘 넣어야 해요.

악보에서 지시어는 따로 이해할 것 같아요. 어떻게 접근하나요?

작곡가가 쓴 지시어를 최대한 맞춰서 구현해요. 대부분 외국어로 적혀 있으니깐, 사전을 통해서 뜻을 익혔어요. 지시어의 의미를 알면 음악적으로 다가오는 느낌이 있어요. 그렇지만 현지 경험을 비롯해 언어 뉘앙스를 세밀하게 체감할 기회가 생기면 더 좋겠죠. 공부 방식에 대해선 최대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어요.

악보를 어떻게 공부하는 편인가요?

한 작품을 공부해도 되도록 많은 에디션을 구해서 비교해요. 같은 곡이라도 출판사마다 지시어, 프레이징, 페달링 등이 다르잖아요. 특히 손가락 번호는 더 세심하게 비교해서 보는 편이에요.

협주곡을 협연 할 때는 오케스트라 총보를 보나요? 모든 악기 소리가 단번에 머릿속에서 그려지나요?

협연할 기회가 생기면 오케스트라 총보를 반드시 분석해요. 그 과정에서 필요한 부분은 제 피아노 악보에 따로 메모를 적어 놓기도 해요. 또한, 오케스트라 총보를 펼쳐 놓으면 여러 악기 소리가 한 번에 섞여서 들려요. 원하는 악기를 따로 집중해서 떠올릴 수도 있고요.

공연을 앞두고 혼자서 총보를 공부한 적은 있나요? 기억에 남는 공연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지난 2014년에 정명훈 선생님과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3번을 협연했어요. 공연 45일 전에 제의를 받았고 백지상태에서 처음 보는 악보를 공부해야 했어요.

기본적인 화성부터 분석해 나갔고, 오케스트라 파트까지 다 머릿속에 넣었죠.

실내악을 할 때도 다른 파트를 모두 외워가나요?

작년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에서 처음으로 실내악 무대에 올랐어요. 실내악 경험이 전혀 없었던 데다가 작품 규모가 큰 ‘코른골트 피아노 5중주’를 맡아서 막막했어요.

결국,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더 철저히 준비했죠. 모든 악기의 악보를 외우고, 각 악기가 주제를 어떻게 주고받는지 파악했어요. 사전에 철저히 준비한 덕에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죠.

올해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에서 어려운 점은 있었나요?

올해 정말 당황스러운 경험을 했어요. ‘샤미나드 피아노 3중주 2번’ 1악장 마무리 부분에서 피아노 줄이 끊어졌어요. 1악장이 끝난 순간에 오만가지 생각이 다 지나갔죠. 계속해서 끊어진 줄을 많이 연주해야 했거든요.

곧바로 2악장이 시작되었고 본능적으로 화음을 자리바꿈하거나, 다른 자리에서 그 화음을 바꿔서 쳤어요. 연주가 끝난 뒤에 혹시 청중들이 어색하게 들었을까 봐 걱정했죠. 다행히 동료 연주자께서 “줄이 끊어진 지 아무도 몰랐다”라고 해주셔서 안심했어요.

인스타그램에서 유명인을 모델로 삼아 그림을 그린 것을 봤습니다. 인물의 사진에서 특징을 잡은 뒤에 상상을 입혀 그려냈더군요. 곡을 해석하는 과정도 비슷합니까?

네 맞아요. (웃음)

저는 그리고자 하는 인물의 개성을 정확하게 파악해서 그 특징을 가장 도드라지게 표현하고자 해요. 곡을 해석할 때도 우선 악보를 기반으로 이미지를 끌어낸 뒤에 저의 캐릭터를 입히지요.

요즘은 연주자를 모델로 그린 그림을 인스타그램에 올려요, 미완성인 제 그림을 보고도 많은 분께서 한눈에 알아보시곤 해요. (웃음)

피아니스트 임주희가 그린 그림들

머릿속에서 상상한 소리를 바로 손으로 표현할 수 있나요? 아니면 윤곽을 잡아 놓고 입으로 흥얼거리거나 직접 치면서 교정하는 편인가요?

머릿속에서 떠올린 이미지를 바로 연주로 표현할 수 있어요. 물론 어렵다 싶은 부분은 실제로 치면서 교정하지만, 대부분 어떻게 표현할지 그림이 그려지면 바로 소리로 표현을 해내요. 입으로 흥얼거리거나 하진 않아요.

상태가 좋지 않은 피아노를 만났을 때는 어떻게 합니까? 바로 머릿속으로 보정이 되나요?

건반을 두드려보면 피아노가 어떤 상태인지 파악이 되잖아요. 어떤 부분에서 균형이 잘 안 맞는지, 어떻게 쳐야 정상적으로 들릴지 상상하죠. 이렇게 머릿속으로 조율해서 칠 수 있어요. 사전에 경험해보지 않은 문제도 이런 식으로 바로바로 대처해요.

공연장에 가면 가장 먼저 무엇부터 점검합니까?

그날 공연장에서 만난 피아노를 얼마나 작게 칠 수 있을지, 얼마나 크게 소리 낼 수 있을지 제일 먼저 점검해요.

어렸을 때와 비교해서 몸을 더 활용해서 연주합니다. 전달력을 위해서 그렇게 하는 건가요?

무대에서 연주할 때는 전달력과 표현력 모두 중요하죠. 특히 피아니시모와 포르티시모가 제대로 잘 전달되는지 리허설 때 신경을 써요.

지금은 어렸을 때 소화하던 레퍼토리보다 큰 곡을 많이 다뤄요. 이제는 몸을 더 안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요. 예전보다 음량에 더 신경을 쓰는 건 맞지만 억지로 소리를 내지는 않아요. 동작이 소리에 가장 좋은 영향을 끼치는 선까지만 움직이려 노력해요.

전달력에 관해서 특별히 조언해주신 분이 계신가요?

제가 13살 때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정명훈 선생님과 처음 협연 무대에 섰어요. 당시에 저는 콘서트홀 3층까지 어떻게 피아니시모를 전달할지 걱정이었죠. 당시에 정명훈 선생님께서 “표현하고 싶은 만큼 작게 쳐도 청중들이 다 들을 수 있다”라며 “3층까지 전달하려고 일부러 크게 연주할 필요가 없다”라고 하셨어요.

추구하는 피아노 음색이 있나요?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야성적인 타건을 좋아해요. 특히 세상에 없는 듯한 반짝반짝한 울림은 정말로 매력적이죠. 제가 추구하는 소리예요.

어떤 레퍼토리를 선호하나요?

특별히 한 작곡가의 작품만을 선호하지는 않아요. 저는 여러 작곡가의 곡을 연주하는 것을 좋아해요. 다만 베토벤은 베토벤답게, 쇼팽은 쇼팽답게, 라흐마니노프는 라흐마니노프답게 연주하는 걸 선호해요. 베토벤, 쇼팽, 라흐마니노프를 한 사람이 연주하는 듯한 상황을 경계해요.

현대곡을 연주할 때 어려움은 있나요?

영화에서 인상 깊은 장면이 나오면 계속 돌려봐요. 영화 대사를 비롯한 배경음악, 효과음 등을 복합적으로 외워요. 이렇게 습관을 들이니까 추상적인 소리에 대해서도 적응이 빠른 편이에요.

마디마다 박자가 바뀌는 현대곡을 연주할 때도 즐겁게 접근해요.

현대 레퍼토리를 처음 연주한 건 언제인가요?

초등학교 3학년 때 프랑스 앙시 페스티벌에서 작곡가 케롤 베파의 ‘피아노 토카타’를 초연했어요. 원래 마추예프에게 헌정한 곡이었다가 저한테 초연 기회가 넘어왔어요. 손가락을 비롯해 체격이 큰 마추예프가 연주할 목적으로 쓰인 곡이라서 어린 나이에 소화하기는 쉽지 않았어요.

어린 나이에 음원도 없는 현대곡을 어떻게 준비했나요?

혼자서 악보를 펼치고 구축했어요. 주변에서는 초연 곡은 틀려도 아는 사람이 없을 거라면서 부담을 갖지 말라고 응원해 주실 만큼 쉽지 않은 상황이었어요. 그렇지만 1주일 만에 곡을 암기하고 열심히 준비해서 무대에 올랐어요.

연주 전날에 케롤 베파 선생님이 직접 오셔서 레슨을 해주셨어요. 제 연주를 듣고는 몇 마디를 추가하는 식으로 곡을 즉석에서 수정하시고는 사실상 초연자인 제게 그 곡을 헌정한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케롤 베파와는 계속해서 교류하고 있나요?

최근에 케롤 베파 선생님으로부터 정식으로 곡을 헌정 받았어요. 제목이 ‘임주희 피아노 에튀드’에요. 좋은 기회에 무대에서 초연할 생각이에요.

앞으로 활동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공부할 거리가 산더미에요. 늘 그렇듯이 배우는 자세로 피아노를 즐겨야죠.

2019년 2월에 정명훈 선생님 지휘로 롯데 콘서트홀에서 협연이 잡혀 있어요. 슈만 피아노 협주곡을 무대에서 연주할 예정이에요.

5월에도 롯데 콘서트홀에서 실내악 연주가 잡혀 있어요. 8월에는 작년에 이어 이시가와 뮤직 페스티벌에서 라이징스타 무대에 올라요.

피아니스트 임주희

피아니스트 임주희

피아니스트 임주희는 만 9세에 지휘자 발레리 게리기에프가 이끄는 마린스키 오케스트라와 함께 데뷔 무대에 올랐다. 또한, 라인가우 뮤직 페스티벌을 비롯해 유년기에 다양한 국제무대에서 활동했다. 특히 2011년에 열린 앙시 페스티벌에서는 현대곡을 초연하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지난 2012년 발레리 게리기에프가 지휘하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과 정명훈 지휘로 서울시향과 협연 무대에 오르며 국내 무대에서 이름을 알렸다.

임주희는 대외 활동을 적극적으로 늘리는 여느 신동과 다르게 긴 호흡으로 음악 공부를 하며 활동을 조정했다. 초등학교 졸업 후 홈스쿨링을 하면서 정명훈이 이끄는 아시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공연,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도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협연, 이시가와뮤직캠프 등 꾸준히 무대에서 경험을 쌓았다. 2019년 현재 유학을 준비하고 있다.

원 코리아 유스 오케스트라 제3회 정기연주회 (협연 : 피아니스트 임주희)

공연명 : 원 코리아 유스 오케스트라 제3회 정기연주회

일 시 : 2019년 2월 23일 오후 8시

장 소 : 롯데콘서트홀

프로그램

슈만 피아노 협주곡 (협연 : 임주희)

브람스 교향곡 2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