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 오후를 채색한 한상일의 드뷔시, 예술의전당 11시 콘서트

한화생명과 함께하는 예술의전당 <11시 콘서트(2018.11.08)> 리뷰

1112
예술의전당 11시 콘서트 / 예술의전당 제공
“열 손가락이 모두 오케스트라처럼 다른 음색을 표현하는 것을 추구합니다.”
– 피아니스트 한상일 인터뷰(2017-09-08)

 

피아니스트 한상일은 지난해 인터뷰 자리에서 두 손을 내밀었다. 한상일은 “손가락 하나하나를 다른 악기처럼 상상하고 그렇게 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다른 질문과 달리 음색에 관한 부분은 꽤 오랫동안 이야기가 오갔다. 러시아 레퍼토리로 유명한 피아니스트지만, 이날 인터뷰에서 오히려 드뷔시의 작품과 잘 어울리겠다는 인상을 받았다.

어떻게 드뷔시의 작품을 풀어갈까. 객석에서 직접 한상일의 연주를 듣고 싶었지만, 한동안 해당 프로그램으로 공연이 열리지 않았다. 이렇게 한해가 지났을 무렵에 한상일이 드뷔시의 작품으로 무대에 오른다는 소식을 들었다.

드뷔시 피아노와 관현악을 위한 환상곡
피아노 울림이 오후를 다채롭게 칠하다

지난 11월 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11시 콘서트>가 열렸다. 이날 공연은 ‘French Chic’이란 부제에서 드러나듯 프랑스와 관련한 작품을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공연 진행은 피아니스트 조재혁이 해설을 곁들이며 맡았다. 또한, 여자경이 이끄는 강남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함께했다.

낭만적인 프로그램과 달리 오전에 비까지 내려서 공연장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공연 직전까지 객석에 시끄러운 소리가 가득했다. 첫 곡인 슈트라우스의 오페레타 <박쥐> 서곡은 순식간에 관객들을 집중시켰다. 이어 클라리네티스트 조성호가 베버의 <클라리넷 협주곡 제2번>을 열연하며 객석의 열렬한 박수갈채를 이끌었다.

2부 시작을 앞두고 다시 분위기가 어수선해졌다. 오페라타 서곡과 달리 드뷔시의 작품으로 객석의 몰입을 이끌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진행자의 해설이 끝나고 한상일이 피아노에 앉았다. 공연 직전에 연주자와 함께 긴장한 적은 있어도, 이날처럼 객석에서 뭔 일이 벌어질지 불안한 적은 흔치 않다.

이날 한상일은 드뷔시의 ‘피아노와 관현악을 위한 환상곡’을 연주했다. 이 곡은 드뷔시 작품세계가 완숙하기 전인 1890년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또한, 지휘자와 작곡가의 마찰로 초연이 취소되는 일을 겪는다. 이후에 드뷔시는 곡의 개작을 거듭했으나 그가 죽을 때까지 공개 연주되지 않았다.

드뷔시의 ‘피아노와 관현악을 위한 환상곡’은 총 3악장으로 이뤄져 있다. 언뜻 듣기에는 피아노 협주곡과 비슷한 인상이지만, 구성 면에서 다소 차이가 있다. 대부분 피아노 협주곡은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의 대조적인 면을 살려서 피아노 독주를 더 드러낸다. 반면 ‘피아노와 관현악을 위한’ 작품은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의 조화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날 연주가 시작되었을 때 무대 근처 좌석에서도 소리가 다소 답답하게 다가왔다. 평소 한상일은 전달력이 부족한 피아니스트가 아니다. 그동안 많은 기교와 큰 음량이 요구되는 러시아 레퍼토리를 쉽게 소화해왔다. 의도적으로 피아노를 내려놓고 친다는 인상을 받았다. 피아노 소리가 오케스트라에 묻히는 것이 아니라 두 악기가 조화롭게 섞이고 있다는 걸 연주가 진행되면서 점점 느꼈다.

한상일은 곡을 미시적으로 쪼개서 연주한다는 인상을 줬다. 붓질하듯이 아티큘레이션마다 다른 색을 입혔다. 또한, 자연스러운 호흡으로 프레이즈를 처리했다. 이를테면 드뷔시는 이 곡에서 연주자에 맡겨둔 지점이 많다. 예를 들어 1악장의 ‘조금 느리게(Un peu retenu)’라고 한 부분은 작곡가의 의도와 연주자의 감각이 더해야 비로소 구현할 수 있는 템포다. 더불어 옥타브를 넘나들고 많은 음표가 몰린 지점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곡을 전개하며 청중을 사로잡았다.

예술의전당 11시 콘서트 / 예술의전당 제공

OUR INSTAGR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