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보컬리스트 나윤선

Youn Sun Nah Moves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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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컬리스트 나윤선. / ⓒ나승열

재즈와 나윤선의 삶은 닮은 구석이 많다. 외형적으로 자유롭게 흐르지만 그 안에서 지켜지고 있는 것들이 있다. “규율을 지키면서도 얼마든지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음악인 나윤선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과거
나윤선은 국립합창단 음악감독을 지낸 나영수 씨와 악단 예그린 배우 출신인 김미정 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모가 음악가인 경우 자녀에게 음악을 조기교육 시키는 경우가 흔하지만, 나윤선의 부모님은 일상 속에서 자유롭게 음악을 접하게 했다. 나윤선은 음악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않은 어린 시절을 ‘축복’이라 말했으며, 대학 전공 역시 음악이 아닌 불어불문학을 택했다.

대학 시절 나윤선은 취미로 노래하는 선에서 음악을 즐겼다. 우연한 계기로 프랑스문화원이 주최하는 샹송대회에서 우승한 적은 있지만, 대학 졸업 후 한 회사에 카피라이터로 입사했다. 직장 생활 도중 주변의 권유로 뮤지컬에 출연하면서 다시 음악과의 연을 이었다. 나윤선은 본격적으로 음악을 배우고자 결심했고, 대학시절 친구이자 기타리스트인 김정렬의 “재즈는 대중음악의 뿌리”란 조언을 따라 유학길에 오른다.

나윤선은 프랑스에서 학교 네 곳을 다니며 재즈부터 성악까지 폭넓게 공부한다. 그래서일까, 나윤선의 음악세계는 재즈에 국한하지 않는다. <Memory Lane>(2007)에서 선보인 가요 재해석부터 샤틀레 극장을 열광케 한 ‘아리랑’과 ‘A Sailor’s Life’ 등 전통음악, 팝, 컨트리까지 여러 장르를 넘나든다. 나윤선은 “세상에는 많은 음악이 있고, 특정 장르에 저를 묶어두고 싶진 않다”고 밝힌 뒤 “제가 좋아하며, 잘 할 수 있고, 관객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면 어떤 장르에도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나윤선은 프랑스를 중심으로 활동을 무대를 넓혔다. 프랑스 몽마르뜨 재즈 페스티벌에서 2등상, 셍 모흐(St-Maur) 재즈 콩쿨 대상으로 이름을 알린 뒤, 프랑스 샤틀레, 니스 재즈 페스티벌, 스위스 몽트뢰 등 주요 무대에서 올랐다. 유명 재즈레이블인 ACT와 계약하고, 두 장의 앨범은 유럽에서 골드디스크를 수상한다. 재즈 디바로서 전세계적인 유명세를 얻어 뉴욕의 재즈 앳 링컨 센터와 블루 노트 등 ‘재즈 본가’인 미국 무대에도 섰다.

해를 거듭할수록 나윤선을 찾는 곳이 많아졌다. 급기야 한 해에 200회가 넘는 공연 일정을 소화했다. 나윤선은 2015년부터 2년간 안식년을 보내기로 결심했다. 나윤선은 “휴식 없이 달려온 시간을 짧게나마 돌아보고 정리하고 싶었다”고 밝혔지만, 쉬는 동안 틈틈이 새 음반 작업을 마무리했다. “지나고 보니 아쉽기도 하네요. 좀 더 쉬고 싶은 생각도 들고요.”

우연히 참가한 샹송 대회부터 재즈 디바로 자리잡기까지, 나윤선은 20년 넘게 음악을 따라 흘러왔다. 나윤선이 지나온 길 중에서도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무대는 무엇일까. “지금껏 소중하지 않은 무대가 없었다”면서도, 지난 4월30일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재즈의 날(International Jazz Day)’ 공연을 꼽았다. 2017년 개최지인 쿠바의 아바나에서 나윤선은 허비 행콕, 이반 린스, 에스페란자 스팔딩, 추초 발데스, 리차드 보나 등과 한 무대에서 공연했다. 나윤선은 지금 생각해도 떨리고 가슴 벅찬 경험이었다고 회상했다.

나윤선과 울프 바케니우스가 함께 연주한 ‘Momento Magito’. / 유튜브 ‘officialyounsunnah

현재
나윤선의 음악적 기반은 프랑스, 넓게는 유럽권으로 볼 수 있다. 같은 지역에서 활동하는 바케니우스, 라스 다니엘슨(스웨덴), 닐슨 란도키(덴마크) 등과 함께 음악을 만들어왔다. 나윤선이 미국까지 활동 무대를 넓히면서 현지 뮤지션과 교류가 늘었다. 최근에는 허비 행콕, 노라 존스, 제이미 사프트 등과 함께 작업했다. 미국과 유럽의 재즈를 모두 겪은 나윤선은 어떤 차이를 느꼈을까.

“음악을 대하는 자세도, 접근 방법도 굉장히 다르다고 할까요. 각자의 장단점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아마도 문화적, 사회적, 역사적 차이가 자연스럽게 이들의 음악에 묻어나는 듯합니다.”

나윤선은 세계적인 재즈 보컬로 자리를 잡았다. 유명세에 대한 부담은 없을까. 그는 “부담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죠”라며 웃으면서도 “세평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이라고 말했다. “뮤지션은 음악으로 이야기하는 존재고, 항상 최선을 다해 자신의 음악을 만들어 나갈 뿐이니까요.”

나윤선은 한 해에 200여 차례 무대에 선다. 공연을 위해서는 무대 설정, 연주곡 구성, 협연자들과의 합, 몸 상태 조절까지 많은 것을 조율해야 한다. “많은 공연을 소화하고 있지만, 무대에 서기 직전에 항상 긴장합니다. 익숙해질 만도 한데 그렇지 않은 자신을 발견하고, 스스로도 의아할 때가 많아요.”

나윤선은 무대를 이어가는 원동력으로 관객을 꼽았다. “긴장한 상태에서도 노래를 시작하면 모든 걱정과 두려움이 눈 녹듯 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관객들과 소통을 시작하죠. 저는 그 순간이 정말 좋습니다. 공연이 끝난 후 관객들과 인사를 나누는 순간도 좋고요.”

나윤선이 노래하는 ‘강원도 아리랑’. / 유튜브 ‘officialyounsunnah

새로운 시도
나윤선은 ‘아날로그’를 주제로 국립극장에서 특별한 무대를 준비한다. 이번 앨범에 담긴 아날로그의 온기를 공연장에서 재현하고자 한다. 무대 위의 소리가 관객들의 귀에 들어가기까지 모든 과정을 아날로그 방식으로 구현한다. 나윤선은 “소리에 민감한 관객에겐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나윤선과 15년간 함께한 곽동엽 기술감독이 음향설비 구축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일부 장비는 직접 공장을 돌며 제작하고 있다고 나윤선은 귀띔했다. “사운드에 공간감을 더해주는 ‘리버브’는 요즘 아날로그 장비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데, 직접 큰 철판을 대고 부품을 주문제작해서 만들고 있습니다.”

이번 내한공연에는 오랜 동료 뮤지션이 함께한다. 이 중 기타 연주자 토멕 미에노스키는 젊은 나이에도 다양한 경험과 실력을 갖췄다고 평가받는다. 토멕과 나윤선은 특별한 인연도 있다. “처음에 토멕의 아버지가 제 음반을 소장한 팬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우리가 함께 무대에 오른다는 소식을 듣고 토멕의 아버지께서 기뻐하셨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인연이죠.”

공연장에서는 4년만의 신보 <She Moves On> 수록곡을 선보인다. <She Moves On>은 스윙보다는 록, 블루스, 포크 등의 색이 묻어난다. 나윤선이 이번 앨범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셨던 것은 무엇일까. “예전 음반과는 확연히 다른 시도였습니다. 미국 뮤지션들과의 작업도 그렇고, 선곡에 큰 변화가 있었죠. 음반의 제목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저는 늘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달까요. (웃음)”

나윤선의 다짐을 반영하듯, <She Moves On>에는 유명 뮤지션이 만든 곡들이 담겼다. 폴 사이먼의 동명의 곡부터 지미 헨드릭스(Drifting), 조니 미첼(The Dawntreader), 루 리드(Teach the Gifted Children) 등의 곡을 들을 수 있다. “이름만 들어도 다 알 수 있는 유명한 뮤지션들이죠. 하지만 제가 선곡한 곡들은 대중에게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곡들입니다. 숨겨진 명곡이랄까요? 제 나름의 해석을 곁들여 새롭게 녹음했는데, 많은 분들이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발매한 모든 음반에 자작곡을 담은 나윤선답게, <She Moves On>에도 자신이 만든 곡을 실었다. 나윤선은 “앞으로도 가급적 많은 곡들을 작곡·발표할 계획”이라며 “언젠가는 제 곡으로만 음반을 낼 생각”이라고 말했다.

보컬리스트 나윤선. / ⓒ나승열

 

나윤선의 음악관
나윤선은 항상 ‘새로운 음악’을 추구한다고 밝히며, 여기에 담긴 두 가지 음악관을 이야기했다. 첫째로, 음악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무대를 준비할 때 연주자들 사이의 소통을 중요시한다. “연주자와 편하게 무대에 서고 스탭과 호흡이 좋다면 그 공연도 당연히 성공적으로 끝나게 됩니다.” 둘째로, 매 공연마다 ‘이 공연이 내 인생 마지막 무대’라는 생각을 한다. “공연이 끝나고 나서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려 합니다.”

나윤선의 음악관에는 프랑스의 영향이 컸다. 나윤선은 프랑스에서 재즈부터 성악까지 다양한 음악을 익혔다. 나윤선은 “노래를 하시는 분들은 호흡과 발성이 중요하다는 점을 잘 알고 계실 것”이라며 “성악 등의 공부가 기본기를 익히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새로운 시도를 위해, 나윤선은 목소리라는 악기를 다양하게 활용한다. 그럼에도 나윤선은 언제나 부족함을 느낀다. “제 목소리에 부족한 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늘 제가 노래하는 음악에 가장 어울리는 표현을 찾으려 합니다.”

나윤선의 음악적 시도는 목소리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악기로 넓어진다. 나윤선은 곡을 접할 때마다 그 곡에 가장 어울리는 악기를 상상한다고 답했다. 다른 연주자가 해결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땐 나윤선 스스로가 해결책을 찾는다. 지난 공연에서 칼림바와 뮤직박스 등의 악기를 택한 것도 이러한 시도의 결과물이다.

그렇다면 나윤선에게 ‘좋은 연주자’란 어떤 사람일까. 나윤선의 답은 명확했다. “다른 연주자들의 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알고 함께 소통하고자 하는 열린 마음을 가진 연주자입니다.”

2018년 나윤선은 어떤 모습을 그리고 있을까. 인터뷰가 이루어진 12월 19일부터 2018년 말까지 이미 공연 일정이 빼곡하다. 오는 4월까지만 해도 한국, 프랑스, 독일 등에서 17개 공연이 확정돼 있다. 여기에 더해 열 번째 음반을 발표할 계획이다. 나윤선은 “새 음반을 중심으로 활동 범위를 더욱 넓히는 2018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포스트 나윤선’을 꿈꾸는 뮤지션을 향한 음악적 조언을 부탁하자, 나윤선은 “무엇이든 과감하게 시도하라”고 답했다. “세상은 넓고, 훌륭한 뮤지션과 음악들이 존재하니, 흥미진진한 일들이 얼마나 많이 있을까요? 하지만 시도를 하지 않으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겠죠.”[/vc_column_text]

재즈 보컬리스트 나윤선

보컬리스트 나윤선. / ⓒ나승열

프랑스 일간지 레제코(Le Echos)는 나윤선을 ‘오늘날 가장 위대하고 훌륭한 재즈 보컬리스트’라고 칭했다. 앨범 <Same Girl>과 <Lento>가 유럽에서 15만 장 이상 판매되며 골드디스크를 수상했고, 프랑스 정부는 나윤선에게 슈발리에 훈장을 서훈했다. 나윤선은 한국대중음악시상식에서 4차례 재즈&크로스오버 부문 최고 음반상을 수상했다. 2017년 4월 30일에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재즈의 날’ 올스타 글로벌 콘서트에 공식 초청돼 쿠바의 수도 하바나에서 재즈 거장들과 협연했다.

발매앨범

Reflet (2001)

Light For The People (2002)

Down By Love (2003)

So I Am (2004)

Memory Lane (2007)

Voyage (2008)

Same Girl (2010)

Lento (2013)

She Moves On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