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임동혁

'어린이 정경' 리뷰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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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임동혁 (c)SangWook Lee / 크레디아 제공
지난 12월 9일 평촌아트홀에서 순회공연 <임동혁 with 모딜리아니 콰르텟>의 마지막 무대가 있었다.  이날 공연에서 피아니스트 임동혁은 슈만의 ‘어린이 정경’을 독주로, ‘피아노 5중주’를 모딜리아니 콰르텟과 함께 연주했다. 공연이 끝난 직후 임동혁을 만나 짧게 이야기를 나눴다. 글 | 기획장 이상권(sangkwon.lee@thestrings.kr)
안양문화재단 제공 – 임동혁 : (c)SangWook Lee , 모딜리아니 콰르텟 : (c)Marie Staggat

어린이 정경 Kinderszenen Op.15

근대화 이전에 어린이는 어른에 이르지 못한 미비한 존재로 여겼다. 이러한 유년의 관점이 달라진 것은 루소를 비롯한 계몽사상계의 역할이 컸다. 그들은 어른과 대비되는 어린이의 순수함과 가능성에 주목했다. 이에 영향을 받은 문학계에서도 본격적으로 유년의 고유성을 다루기 시작한다. 당시에 문학에 조예가 깊었던 작곡가 슈만은 바로 이 근대적으로 재해석된 유년을 모티브로 ‘어린이 정경’을 작곡한다.

‘어린이 정경’은 청년 슈만의 입장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지은 피아노곡이다. 작곡 당시 슈만의 나이와 이번 공연에서 연주한 임동혁의 연령대가 비슷해서 감성적으로 잘 맞을 거란 기대가 있었다. 이날 공연은 입장 문제로 예정보다 5분가량 늦게 시작되었다. 객석이 차분해지자 무대에 나온 임동혁은 곧바로 피아노에 앉아 피아노 건반을 눌렀다.

슈만의 ‘어린이 정경’은 13곡의 모음으로 이뤄져 있다. 초판 악보(1839)를 살펴보면 각 곡의 첫 마디에 페달기호가 달리지만, 편집본에 따라 기호가 없거나 곡마다 표기가 다른 경우가 있다. 실제 이 곡을 연주한 피아니스트 가운데 적극적으로 페달을 사용해 연주한 경우도 있고, 페달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제1곡인 ‘미지의 나라들’은 A-B-A 구조로 A부분 선율이 드러나며 곡이 시작되는데, 첫 곡부터 임동혁은 과한 페달링 없이 담백한 연주를 들려주었다.

‘어린이 정경’은 제1곡의 모티브를 순환형식(cyclic form)으로 나머지와 연결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각 곡은 겉으로는 13개의 독립적인 곡으로 이뤄진 것 같아도, 내부구조를 따져보면 각 주제 간 조성의 관계부터 주제의 흐름이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다. 즉 주제별 개성은 살리면서 큰 틀에서 하나의 곡처럼 흘러야 한다. 임동혁은 이 부분에서도 흠잡을 곳 없었다.

[vc_text_separator title=”피아니스트 임동혁 인터뷰 (2017년 12월 9일)” color=”black”]

Q. 슈만의 ‘어린이 정경’을 독주로, 피아노 5중주를 모딜리아니 콰르텟과 협연하셨습니다. 이번 순회공연의 마지막 날인 오늘 연주(12/9, 평촌아트홀)는 만족하나요?

어느 날 리히터가 연주회 끝나고 들어와서는 곧바로 피아노를 쳤다고 합니다. 주변에서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리히터는 “다음 연주를 준비한다”고 답했답니다.

저 역시 늘 연주를 마치면 ‘더 좋을 수 있던’ 지점이 나와요.

Q. 기록상 슈만은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분석되는데, 그의 곡을 다루실 때 심적으로 힘드신 점은 있습니까?

그런 건 없는데, 슈만의 곡이 기괴하긴 해요.

Q. 작곡가는 악보라는 이성으로 걸러서 자신의 감흥을 담아내는 작업을 했습니다. 다시 이 악보를 음악으로 풀어내는 과정을 어떻게 접근하시는 편입니까?

음악에 감성적인 면이 많을뿐더러, 이 세상의 감정을 표현하는 도구로써 음악이 쓰이곤 하지만, 음악은 감흥으로만 이뤄지진 않습니다.

저는 음악을 물리학이나 수학과 다름없는 학문으로 여깁니다. 피아니스트가 학구적 자세를 유지하면서 꾸준히 음악에 접근하면, 찻잎 우러나듯이 연주에 감정이 배어 나올 겁니다.

Q. 연주하실 때 음색이 다르게 느껴지는 걸 넘어 피아노 소리가 사람의 음성처럼 들릴 때가 있습니다. 다른 요소보다 음색에 비중을 크게 두는 편인가요?

음색에 많은 비중을 두는 건 맞습니다. 더불어 피아니스트는 자기만의 음색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Q. 자기만의 음색을 갖추기 위해 특별히 노력하는 부분은 있으신가요?

피아니스트의 음색은 9할이 재능이라 생각합니다. 배워서 낼 수 있는 음색은 한계가 있어요.

절대로 제가 재능을 타고 났다는 취지에서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 역시 주어진 것 안에서 최대한 좋은 음색을 내려고 연습합니다.

Q.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음악관도 달라지기 마련인데, 요즘은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관점이 달라지기보다는, 예전만큼 음악이 쉽게 되질 않습니다. 어려워진 만큼 그 소중함을 더 느끼고 있습니다.

Q. 유명 연주자들 사이에서 사제 관계가 형성되면 어떤 교류가 이뤄지나요?

마르타 아르헤리치와 제 관계를 말씀하신다면, 우리는 사제 관계가 아니에요.

각자 스케줄이 있어서 한동안 연락이 뜸할 때도 있고, 그러다 연락이 닿으면 다양한 이야기가 오갑니다. 이를테면 키우는 강아지 사진을 주고받으며 대화한 적도 있죠.

Q. 내년에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 마르타 아르헤리치와 듀오의 레코딩 소식이 있습니다.

우선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레코딩은 확정되었습니다. 마르타 아르헤리치 여사께서도 ‘아프거나 천재지변이 벌어지지 않는 한’ 함께 레코딩을 하시기로 하셨고요.

두 레코딩의 커플링 앨범으로 계획하고 있습니다.

Q. 레코딩과 연주회 차이를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요즘 연주회는 몰래 녹음하는 경우가 많고, 또 이게 인터넷에 쉽게 퍼질 때도 있습니다. 연주회에서 한 번만 못 쳐도 소문이 크게 나기 쉬워서 더 부담스러운 점은 있습니다.

쉽게 말해 레코딩은 평균 연주력에서 5% 정도 더 좋은 부분을 발췌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최악의 연주는 면할 수 있어요. 반대로 연주회에선 최악의 연주도 나오지만 레코딩보다 더 나은 연주가 이뤄지기도 합니다.

Q. 2018년 활동에 대해 짤막하게 소개해주세요.

1월에 이태리에서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 씨와 체임버 공연을 하고, 2월에 파리에서 녹음합니다.

3월에 한국에서 리사이틀이 있습니다. 현재는 예술의 전당 공연이 확정된 상황인데, 다른 지역을 포함한 순회공연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6월 말에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녹음을 진행합니다.

피아니스트 임동혁

피아니스트 임동혁 (c)SangWook Lee

피아니스트 임동혁은 롱-티보 콩쿠르 1위 수상 및 5관왕, 퀸 엘리자베스, 쇼팽, 차이콥스키 세계 3개 콩쿠르 석권 등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국내 최초로 클래식계 팬덤 현상을 만들어낸 스타 연주자이다. 탁월한 음악적 해석과 뛰어난 연주실력으로 평단과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는 특히 슈베르트, 쇼팽 등 낭만파 작곡가의 음악 표현에 타고난 재능을 인정받았다. 최근 더 깊이 있는 연주실력으로 세계적인 찬사를 받고 있다. – 안양시문화예술재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