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의 어제, 오늘, 내일 – 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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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대중화

영국에서 피아노가 발전하게 된 계기는 ‘7년 전쟁(Seven Years’ War)’이다. 1960년에 독일의 피아노 기술자들이 전쟁을 피해 영국으로 이주한다. 이 무리에서 주목할 인물은 질베르만의 제자인 요하네스 줌페(Johannes Zumpe, 1726-1790)다. 영국에 온 줌페는 부르카트 슈디(Burkat Shudi, 1702–1773)의 공방을 거치고, 런던 하노버 광장에 피아노 제작소를 차린다. 여기서 줌페는 크리스토포리의 액션을 간소화해서 1766년에 ‘스퀘어 피아노(Square Piano)’를 선보인다.

스퀘어 피아노 / wikipedia

줌페보다 앞서 크리스티안 프리히드리(Christian Ernst Friederici, 1709-1780)가 스퀘어 피아노를 제작한 기록이 있다. 줌페와 프리히드리 모두 질베르만 밑에서 피아노를 제작을 익힌 탓에 두 사람이 만든 스퀘어 피아노는 구조적으로 비슷하다. 다만 줌페는 피아노의 크기를 대폭 줄이고(18 x 48in), 실용적인 면을 향상해 스퀘어 피아노의 대중화에 기틀을 잡는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란 속담처럼 스퀘어 피아노를 활용할 음악가도 필요했다. 1768년 요한 크리스챤 바흐(Johann Christian Bach, 1735–1782)는 영국에서 열린 공개 연주회에서 줌페의 피아노로 연주한다. 이뿐만 아니라 스퀘어 피아노에 맞춰 피아노 소나타를 작곡한다. 이를 기점으로 영국에서 스퀘어 피아노 인기가 올라가서 훗날 미국과 유럽 전역에 유행한다.

스퀘어 피아노의 대중화에는 수많은 회화적 증거가 있다. 당시 풍속화를 살펴보면 유산계급 가정에 스퀘어 피아노가 자주 등장한다. 여기에는 음악 외적인 요인도 크게 작용한다. 중산층 여성에게 피아노 연주가 교양으로 다뤄지고, 스퀘어 피아노가 응접실에 어울리는 가구로 여겨진다. 스퀘어 피아노가 품위의 상징이 되면서 전문 음악인을 넘어 일반 가정에 자리 잡는다. 피아노 보급은 예술계에 곧바로 영향을 미친다.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은 독립된 직업인으로서 창작을 시도한 최초의 음악인이다. 베토벤 이전 음악가는 왕실과 귀족의 후원을 받으면서, 작품 상당수를 그들의 취향에 맞춘다. 반면 베토벤은 후원자의 음악적 개입을 최소화하고자 노력한다. 베토벤이 후원자와의 종속 관계를 거부한 이유는 복잡하지만, 경제적인 면을 살펴보면 수입 경로의 다변화가 있다. 베토벤은 악보 판권을 출판사에 적극적으로 팔았다. 왕과 귀족의 후원뿐만 아니라 대중을 대상으로 수익 모델을 만든 것이다. 이렇게 악보 시장이 형성된 배경에는 피아노의 보급률이 높아진 점이 크다.

모차르트는 피아노를 주요 악기로 올라서는 데 기여했고, 베토벤은 음악인의 상품성을 스스로 증명했다. 피아노를 감상하거나 연주하는 인구가 점차 증가하면서 피아노 제작에 변화가 생긴다. 공교롭게도 최초의 피아노 이름에 크게(포르테)와 작게(피아노)가 붙여진 것처럼, 피아노 제작은 더 ‘크게’ 울림을 내려는 움직임과 크기를 더 ‘작게’ 만들려는 노력으로 나뉜다.

더 크게

피아노 제작사 ‘브로드우드앤드선즈(John Broadwood &Sons)’의 전신은 줌페가 거쳐간 슈디의 건반악기 제작소다. 줌페가 슈디의 공방을 떠날 무렵에 피아노 역사에 빼놓을 수 없는 또 다른 인물이 합류한다. 스코틀랜드 출신인 존 브로드우드(John Broadwood, 1732–1812)는 1761년에 런던으로 이주해 슈디의 공방에 취직한다. 브로드우드는 슈디 사망 후에 사업을 물려받아서 1795년에 브로드우드앤드선즈로 기업명을 바꾸고 피아노 사업을 확장한다.

브로드우드앤드선즈의 역사 짧게 보기 / 유튜브(Yorkshire Pianos)

브로드우드앤드선즈는 당대 음악인에게 기술력을 인정받고, 왕실에 피아노 공급을 하며 명성을 높인다. 이런 성장 배경에는 창업자 브로드우드의 혁신이 있다. 브로드우드는 줌페의 스퀘어 피아노에서 개선점을 찾는다. 1780년대에 브로드우드는 피아노 핀 블록을 현의 뒤에 놓아 판의 울림을 개선하고, 발을 이용해서 음의 지속성을 조절할 수 있도록 댐퍼 페달을 고안한다.

브로드우드의 댐퍼 페달은 오늘날까지 이어지지만, 현대 피아노와 당시 피아노의 성질은 다르다. 예를 들어 베토벤이 악보에 지시한 대로 현대 피아노로 페달을 사용하면 음이 번지는 정도가 심하다. 두 피아노에 여러 차이가 있지만 가장 두드러진 점은 소리의 크기다. 초기 피아노는 살롱이나 작은 홀에 적합하지만, 현대 피아노는 수천 석이 있는 대형 홀에서 충분한 울림을 낸다. 브로드우드가 피아노를 제작할 당시는 피아노 진화가 시작할 무렵이다.

프랑스 대혁명(1789)은 ‘낡은 체제(Ancien Régime)’의 해체를 상징한다. 혁명 슬로건인 “자유, 평등, 박애(Liberté, Egalité, Fraternité)”는 유럽 전역에 영향을 미친다. 이 혁명으로 피아노의 위치도 상류문화에서 대중문화로의 전환을 겪는다. 물론 혁명 직후에 모든 시민이 피아노 연주회를 즐긴 것은 아니었다. 부르디외(Pierre Bourdieu, 1930-2002)의 ‘아비투스(Habitus)’ 관점에서 본다면 당시에 피아노 연주회는 유산계급에 한정한 문화였다. 그럼에도 유산계급의 절대 수가 증가하면서 더 많은 관객이 몰리고 공연장은 규모가 커진다. 대형 홀에서 공연할 수 있도록 피아노 제작은 음량 강화에 초점을 맞춘다.

피아노 음량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현들의 장력이 톤 단위를 훌쩍 넘어갔다. 나무 프레임으로 이뤄진 피아노는 현이 당기는 힘을 견디지 못하고 뒤틀림이 발생한다. 이 문제는 미국에서 먼저 직면했다. 미국 목재로 제작한 피아노는 현의 장력에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나무가 아닌 철을 활용하기 시작한다. 1825년 미국의 피아노 제작가인 알페우스 밥콕(Alpheus Babcock, 1785-1842)이 피아노 철제 프레임으로 특허를 낸 이후에 피아노 제작에서 철골 구조는 필수로 여겨진다. 여기에 피아노 액션이 한차례 진보하면서 현대의 피아노에 가까워진다.

프랑스 피아노 제작가인 세바스티앙 에라르(Sébastien Erard, 1752~1831)는 프랑스 대혁명을 피해 잠시 영국으로 피신한다. 당시만 해도 에라르는 대외적으로 주목받는 제작가는 아니었다. 피아노 제작을 영국과 독일이 주도하고 프랑스는 후발주자로 참여한 점이 컸다. 에라르의 초기작도 수입한 피아노를 뜯어서 이를 기반으로 만든 것이다. 현대식으로 말하면 역공학(Reverse Engineering)을 한 셈인데 아무래도 개발이 활발히 이뤄지는 본류를 따라가기 쉽지 않았다. 영국에 도착한 에라르는 그곳에서 최신 제작기술을 직접 익힌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피아노를 분석했던 경험을 살려 영국식 피아노 액션의 문제를 하나씩 개선해간다. 다시 프랑스로 돌아온 에라르는 피아노 액션의 개선점을 모아서 1822년에 이중이탈장치(double-escapement)로 특허를 낸다.

이중이탈장치 설명 / 유튜브(Steven Massicotte)

에라르의 이중이탈장치가 적용한 액션으로 건반을 더 빠르게 반복해서 누를 수 있다. 이 혁신은 낭만주의로 이어지는 음악사조에 영향을 미친다. 이 시기 에라르의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작곡가로 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 1811-1886)를 꼽는다. 에라르는 리스트에게 자신이 제작한 피아노를 후원한다. 리스트의 ‘초절기교 연습곡(Transcendental Études)‘ 중엔 초당 수십 회 타건이 나오는데, 여기서 에라르의 피아노의 영향을 가늠할 수 있다. 에라르의 액션은 그의 조카를 비롯해 후대 제작가를 거치며 개선은 되지만 큰 틀에서는 변화 없이 현대 피아노에 적용하고 있다.

리스트 ‘초절기교 연습곡’ – 다닐 트리포노프 / 유튜브(Mohammad Ansarin)

19세기 초중반에 피아노 제작기술은 기틀을 잡힌다. 기술효과가 성숙기에 이르면 효율에 초점을 맞추듯이 피아노 제작은 같은 부피에서 최대의 효과를 내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는다. 피아노 내부에 저음부와 고음부로 현을 나눠서 교차로 배치하는 시도가 여러 제작자 사이에서 이뤄진다. 피아노 제작사 스타인웨이앤드선스(Steinway & Sons Co.)는 19세기 중반에 철골 구조와 교차식 현을 활용해서 그랜드 피아노를 제작한다. 학자마다 의견 견해차는 있지만, 통상적으로 이 시기부터 현대 피아노의 시작으로 여긴다.

더 작게

대형 공연장에 적합한 그랜드 피아노가 등장하면서 전문 음악인에게 스퀘어 피아노의 입지는 줄어든다. 스퀘어 피아노는 중산층 가정의 상징으로 응접실에 놓여 명맥을 이어가지만, 19세기에 탄생한 ‘업라이트 피아노(Upright Piano)’에 밀려서 자취를 감춘다.

최초의 업라이트 피아노(호킨스, 1800) / wikipedia

스퀘어 피아노가 업라이트 피아노에게 뒤처진 이유는 무엇일까? 일반 가정에서 더 작은 피아노를 원했기 때문이다. 스퀘어 피아노 역시 크기가 작으므로 언뜻 생각하면 이상한 답이 될 수 있다. 동일한 음량을 내기 위해 두 피아노가 차지하는 바닥면적을 생각하면 이해가 빠르다. 스퀘어 피아노가 업라이트와 같은 수준의 음량을 내려면 차지하는 바닥면적이 배가 넘어간다. 업라이트 피아노는 현과 향판을 세우는 방식을 채택해서 일정 수준까지는 기본 면적만 차지하며 음향의 질을 늘릴 수 있다.

미국에 거주한 영국인 발명가인 존 아이 작 호킨스(John Isaac Hawkins, 1772–1855)는 그랜드 피아노에 준하는 음향을 내면서 이동이 간편한 방식을 고민한다. 연구 끝에 현을 세우는 방식으로 1800년에 업라이트 피아노를 고안한다. 최초의 업라이트 피아노는 판매 직후에 반품이 될 정도로 문제가 있었지만, 영국의 피아노 제작자인 로버트 워넘 (Robert Wornum, 1780-1852)이 1811년에 구조 개선을 하면서 현재의 업라이트 피아노의 모습을 갖춘다.

업라이트 피아노는 중산층의 확대와 피아노 제작사의 할부정책이 맞물려 돌아가면서 판매량이 급증한다. 19세기 말에는 업라이트 피아노의 연간 판매량이 수십만 대를 넘기고, 인기 악보는 해마다 만 부 이상 팔린다. 업라이트 피아노가 그랜드 피아노보다 판매율이 월등히 높은 이유는 적당한 음향 수준을 지녔으면서 방 안에 배치할 수 있을 만큼 작았기 때문이다. 경제 성장으로 그랜드 피아노를 구매할 수 있는 계층은 대폭 증가했지만, 판매량은 이에 미치지 못했다는 점이 이를 반증한다. 20세기에는 업라이트 피아노를 중심으로 전 세계로 피아노는 확산된다.

피아노 보급과 도시의 인구 집중화가 겹치면서 발생한 사회문제가 있다. 피아노 소리를 두고 이웃 간에 불화가 생긴 것이다. 신동으로 불리던 피아니스트 랑랑(郎朗, 1982~)마저 어렸을 적에 피아노 소리 문제로 이웃과 마찰을 겪었다. 아무리 좋은 연주라도 원하지 않을 때 듣는 일은 고역이다. 19세기에는 피아노 소리를 더 크게 만드는 일이 중요했다면, 현대 사회에는 피아노 소리를 더 작게 내는 일이 필요했다.

Roland 디지털 피아노 공연 / 유튜브(RolandChannel)

피아노 소리는 방음하거나 부스를 설치해서 줄일 수 있다. 이런 조치는 전문 음악인의 길을 걷거나 열정이 이에 따르지 않는 이상 부담스러운 일이다. 피아노를 취미로 즐기는 다수의 사람에게 디지털 피아노는 썩 나쁘지 않은 대체재로 자리 잡는다. 전자 피아노는 건반을 누르면 센서가 이를 감지하고 음원으로 소리를 내는 방식이다. 연주자가 피아노 음량과 음색을 설정할 수 있고, 헤드폰으로만 들으며 외부에 소리는 내지 않는 것도 가능하다.

전자 피아노는 어쿠스틱 피아노에 비해 음의 다이내믹이 부족하고 터치감도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이를 보완하고자 음원칩의 개발과 해머 건반을 비롯해 다양한 개량이 이뤄지고 있다. 이 과정이 어쿠스틱 피아노의 모사에 불과해서 완전한 대체품이 되기에는 아직 부족하다.

구글 마젠타 프로제트

현재 구글은 ‘마젠타 프로젝트(magenta.tensorflow.org)’를 진행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머신러닝(Machine Learning)을 예술의 영역에 적용하는 실험이다.

구글 마젠타 프로젝트 프레젠테이션 / 유튜브(Google Developers)

마젠타 프로젝트에는 가운데 악기와 소리에 관한 연구도 있다. 딥 러닝을 적용한 ‘신경 신디사이저(Neural Synthesizer, Nsynth)’를 통해 약 30만 개의 음원과 천여 개의 악기 데이터를 합성할 수 있다. 디지털 피아노와 마찬가지로 원음을 완벽히 재현할 수는 없지만 새로운 음색을 창조할 수 있다. 이 실험은 초기 단계지만 기존 악기의 모사가 아닌 창조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피아노는 혁신으로 탄생하고 수많은 실험으로 개량되어온 악기다. 어쩌면 피아노의 미래는 인공지능이 가져오는 혁신에 있는지도 모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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