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보컬리스트 다이안 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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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안 슈어. /통영국제음악제 제공

어려움은 무대 뒤로 던져두고, 페르소나를 가지고 갈 것”
다이안 슈어가 한국을 찾았다. 1998년과 2008년에 이어 세 번째다. 슈어는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고, 무릎을 굽히지 못해 대신 허리를 숙이고 팔을 땅에 짚어 인사해야 했다. 하지만 피아노 앞에 앉는 순간, 슈어는 금방이라도 어딘가로 날아갈 것처럼 자유롭다.
글| 기자 윤진근(jingeun.yoon@thestrings.kr)

다이안 슈어는 인큐베이터에서 시력을 잃었다. 어쩌면 불의한 사고가 그의 음악적 기반이 된 것인지도 모른다. 남들보다 귀가 더 크게 열린 까닭인지 그에겐 정확한 음정을 비롯해 뛰어난 음감이 있었다.

슈어의 가정환경도 음악적 성장에 기반이 되었다. 음반 수집가인 모친과 아마추어 연주가인 아버지 덕에 일찍이 다양한 음악을 접할 수 있었다. 이렇게 귀로 익힌 음악으로 피아노를 독학했고, 만 10세에 홀리데이 인(Holiday Inn)에서 첫 번째 공개 무대를 갖는다. 다음해부터 워싱턴 주립 맹아학교에서 피아노 정규 교육을 받으며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시작한다.

다이안 슈어. /통영국제음악제 제공

1979년 몬트레이 재즈 페스티벌은 슈어의 음악 인생에 전환점이 된다. 당시에 스탄 게츠는 슈어가 Amazing Grace를 부르는 모습을 인상 깊게 지켜봤다. 이러한 인연으로 스탄 게츠는 1982년에 열린 백악관 공연 맴버로 슈어를 초대한다. 이 공연은 슈어가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B.B.킹, 레이 찰스, 카운트 베이시, 프랭크 시나트라를 비롯해 재즈와 블루스 그리고 팝을 넘나드는 뮤지션과 교류한다.

슈어는 음반도 활발히 발표한다. 1984년 호평을 받은 첫 앨범 ‘Deedles’ 이후 지금까지 총 23장의 앨범을 냈다. 본지와 인터뷰에 따르면 현재도 새 앨범을 작업 중이라고 밝혔다.

순간을 즐기는 뮤지션
다이안 슈어는 오로지 소리로 교감한다. 무대 위에서 귀를 열고 동료의 연주에 맞춰 노래하거나 피아노 건반을 두드린다. 동료를 마주볼 수 없기에 즉흥 연주가 오가는 상황에서 합이 어긋나는 순간이 나오기도 한다. 슈어는 오히려 이러한 지점을 능숙히 다루며 전형적인 재즈 문법과 다른 자신만의 흐름을 만들어 내기로 유명하다.

2017 통영국제음악제 무대에서도 슈어는 자신만의 소리를 만들었다. 색소폰 주자 돈 브레이든이 즉흥연주를 펼치자 슈어는 자연스럽게 음을 따라 내거나 화음을 넣었다. 그러더니 슈어는 브레이든과 연주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즉흥연주를 주고받으며 흐름이 엉키거나 서로의 영역을 삼키기도 했다. 곡의 리듬을 벗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슈어와 브레이든은 능숙하게 각자의 이야기를 연주에 풀었다. 이렇게 슈어는 헤드-솔로-트레이드-헤드아웃이라는 재즈 신의 정해진 흐름과 다른 방식으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었다.

다이안 슈어. /통영국제음악제 제공

보컬리스트 Vs. 피아니스트
다이안 슈어는 음악을 처음 접했을 때부터 늘 피아노와 함께했다. 하지만 이번 내한에서는 다섯 번째 곡인 How Insensitive에서야 피아노 즉흥연주를 처음 선보였다. 지금까지 이 연주를 위해 아껴온 듯, 그의 목소리를 닮은 굵고 진폭이 강한 연주를 선보였다.

슈어가 피아노 독주를 잘 드러내지 않는 이유는 보컬리스트로 정체성이 확고하기 때문이다. 슈어는 호세 펠리시아노·레이 찰스 등과의 듀오 연주부터 카운트 베이시 오케스트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구성 속에서 존재감을 드러내왔다. 객석 구석까지 녹아드는 아스라한 목소리부터 홀 전체를 울리는 커다란 진폭까지, 슈어의 목소리는 장르와 규모를 불문하고 빛을 발했다.

슈어의 목소리는 악기가 없을 때 가장 빛났다. 다른 연주자 없이, 피아노에서도 손을 뗀 채 목소리만으로 ‘연주’하는 Somewhere over the rainbow는 현장을 감동시켰다.

슈어에게 장르는 무의미하다
다이안 슈어는 스윙과 라틴 그리고 funk 등 재즈 안에 있는 다양한 리듬을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다이안 슈어는 연주 대부분을 보사노바 리듬으로 선보였다. 스윙 리듬으로 더 익숙한 Watch what happens도, 발라드 곡인 I’ve got you under my skin도 보사노바 리듬을 차용했다. 보사노바 곡인 How Insensitive는 말할 것도 없다.

Spain에서 속도감 있는 라틴 리듬이 흥겨움을 더했다. 각자의 열기에 한껏 취해 걷잡을 수 없이 빨라지는 연주 속에서도 제주(齊奏)는 이어졌다. 그 속에서 슈어의 목소리는 더욱 또렷하게 들려왔다.

슈어는 앙코르로 허비 행콕의 Watermelon Man과 헤롤드 아를렌의 Somewhere Over the Rainbow였다. 스탠다드 재즈 발라드와 현대적 funk 사이에는 스윙과 보사노바 그리고 퓨전에 이르기까지 슈어의 음악적 족적이 그대로 묻어났다.

슈어는 재즈에 익숙치 않은 이들에게도 손을 내밀었다. 블루스 연주에서는 스윙 특유의 2. 4 리듬을 유도하고, 비틀즈의 Let it be 등 관객에게 익숙한 곡들을 편곡했다.

약 90분이 채 안 되는 시간, 슈어는 자신이 건너온 음악세계를 한국에 펼쳤다.

다이안 슈어. /통영국제음악제 제공

다음은 다이안 슈어와의 일문일답.

반갑습니다. 인터뷰 진행자 윤진근입니다.
안녕하세요, 윤. 절 Deedles라고 불러주세요(다이안 슈어는 친구들이 ‘Deedles’라는 애칭으로 부르는 것을 좋아한다).

이번 연주를 들어보니 보사노바 리듬이 많았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보사노바와 스윙 리듬도 재즈 안에 있어요. 어떤 리듬을 택하는지보다 좋은 음악을 들려주는 일이 중요하죠.

한국에서의 연주는 어땠습니까?
오늘 무대에서 ‘한국에 다시 오고 싶다’고 말한 건 진심입니다. 여기에 오려면 비행기로만 십수 시간이 걸리지만, 한국 관객을 생각하면 다시 오고 싶어지죠. 그만큼 제게 한국에서 기억은 손꼽을 만큼 좋습니다.

전에도 한국에 오신 적이 있죠?
1998년에도 한국에 온 적이 있어요. 2008년에도 한국을 찾았죠. 매번 뜨거운 반응을 보여줬어요. (당시 다이안 슈어는 공연 수익 일부를 장애인 단체에 기부하기도 했다. 편집자 주)

이번 공연에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무대 위에서 Somewhere over the rainbow 를 부를 때 관객과 마음이 통하는 걸 느꼈습니다. 말로 다 전할 수 없는 영적인 교감이 있었죠.

저는 Somewhere over the rainbow 를 부를 때마다 전세계에서 고통 받는 이들을 떠올립니다. 시리아를 비롯해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제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이 감정을 노래에 담아 객석까지 닿을 수 있기를 늘 희망합니다.

연주하며 가장 중요시 여기는 것은 무엇입니까?
제가 공연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힐링’입니다. 연주하며 많은 사람을 치유하고. 내 눈으로 볼 수 없는 이들도 끌어안는 것이 제 사명이라고 생각해요. 연주를 통해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면서 저도 기쁨을 느낍니다.

연주자들은 연주 중 눈으로 인터플레이를 많이 합니다. 하지만 조심스럽게 말씀드리자면, 당신에게는 무대 위에서 그것이 어려울 것 같아요. 하지만 당신은 멋진 인터플레이를 보여주었어요.
어려움이 있냐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연주에는 시력이 아닌 내면의 시야가 필요하죠. 음악은 눈보다는 귀가 열려 있어야 하고요.

연주할 때 솔로 주자들에게 고개를 돌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무대 위에 연주자나 객석 반응을 보지 못해도 저는 저만의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어요. 말하자면 내게 당신이 보이지 않더라도, 나는 당신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제가 연주자에게 고개를 돌렸다고 하셨죠? 그것 자체가 예술을 만드는 일부입니다. 한 사람이 어떻게 음악을 만드는지, 어떻게 서로 상호작용하는지, 어떻게 소통하는지… 무대 위에서 연주자와, 관객과 잘 소통하는 것이 제 바람이에요.

때로 그게 잘 안 된다면 후회하게 될 거에요. 하지만 저는 인생에 있어서 후회 없이 살고 싶어요. 세상을 떠날 때까지요. 연주를 보러 온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거에요.

다이안 슈어. /Photos by Lani

많은 연주자들과 연주를 하셨는데, 큰 영향을 미친 뮤지션이 있을까요?
저와 연주했던 모든 연주자들을 좋아해요. BB 킹은 인간미 넘치는 사람이에요. 레이 찰스는 제가 키우던 아기 고양이 리들을 잃고 슬픔에 빠졌을 때 제게 전화해 한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눴어요. 스티비(스티비 원더), 스탄 게츠 역시 멋진 연주자죠. 이렇게 좋은 사람들 중 한 사람을 고르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그들 모두 특별하고, 훌륭한 연주자니까요.

작곡도 하셨습니다.
많이 하지는 않았어요. 제가 작곡한 건 Pilot of my destiny 와 Life goes on 두 곡이에요.

이 중 Pilot of my destiny 는 비행기 조종사였던 쌍둥이 데이비드에게서 영감을 받은 곡이에요. 저는 데이비드를 조종사, 데이비드는 저를 부조종사라 불렀죠. 데이비드는 현재 은퇴해 social security로 일하고 있어요. (데이비드는 항공기 조종사가 아닌 미연방항공청 소속 조종사였다. 편집자 주)

그래서 Pilot of my destiny 앨범 커버에 보잉 727 기 조종석을 담았어요. 이 사진을 촬영할 때 저는 부조종사 자리에 앉았는데, 정말 멋진 경험이었어요.

Life goes on은 제가 16살 적에 쓴 곡이에요. 13살에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이후 많은 학교를 전전했죠. 이 무렵 겪은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모습들이 Life goes on을 작곡하게 해줬어요.

연주자들을 위한 조언이 있다면.
연주하면서 충만한 감정과 열정을 가지고, 음악 그 자체를 사랑했으면 좋겠어요.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즐겁고 재미있게 연주하고요. 그루브도 잊지 마세요.

인생을 살면서 많은 일이 있겠죠. 하지만 어떤 어려움도 무대 위에 가지고 가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무대 뒤에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대신 그 빈 공간에 당신의 페르소나를 가지고 가세요. 진실함과 정직함을 가지고요.

향후 계획이 있으시다면.
조금 도전적인 녹음을 하고 있어요. 블루스 앨범을 준비 중입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 세계를 돌아다니며 사랑을 나누고 연주할 거예요.

한국 팬들에게 한마디 해주신다면.
I love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