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금 명인 황병기

絃과 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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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을 튕길 때마다 한 폭의 그림이 펼쳐지는 일. 글 | 기획장 이상권(sangkwon.lee@thestrings.kr)

 

사진|황병기 홈페이지(bkhwang.com)

오는 길에 선생님 댁을 살펴보니까, 사방으로부터 떨어져 있습니다. 집을 선택하실 때 연주 가능한 환경을 고려하셨는지요?

그저 조용한 집을 원했습니다. 전망보다 이 점을 선호합니다.

여든이 넘은 지금도 연주활동을 하십니다. 하루 몇 시간 정도 연습을 하시나요?

젊었을 적에는 매일 7시간 이상은 했습니다. 지금은 체력이 그렇게 따라주질 않습니다.

가야금 연주자는 매일 7시간 이상 연습이 뒷받침되어야 하나요?

일반적으로 8시간 이상 하면 실력이 향상되고, 3시간을 하면 현상 유지, 그보다 못하면 연주력이 퇴보합니다. 모든 악기가 그렇겠지만, 특히 현악기는 매일 연주해야 합니다. 일주일만 악기를 잡지 않으면 손에 박인 굳은살이 다 빠져요. 그렇게 되면 아파서 연주를 바로 하질 못합니다.

대형 홀과 소형 공연장에서 연주할 때 차이가 있나요?

대형 홀이나 소형 공연장이나 연주에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대형 홀 연주는 마이크가 있으니까요. 다만 마이크를 거치면 음색이 조금 변하기 때문에, 이왕이면 소형 공연장에서 직접 듣는 편이 낫습니다.

가야금 연주를 직접 듣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규모가 적당합니까?

100석 이하가 좋습니다. 그 이상으로 규모가 커지면 뒤쪽 관객은 세밀하게 감상하기 어렵습니다.

1958년 마로니에 광장. 사진|황병기 홈페이지(www.bkhwang.com)

마당 공연처럼 야외에서는요?

야외에서는 마이크를 사용하는 편이 좋습니다. 그래야 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있거든요.

가야금은 계속해서 개량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12현 전통 가야금을 주로 연주합니다. 17현 가야금으로 여러 곡을 썼습니다.

북한은 21현, 연변에서 23현, 다시 한국에서 2줄 더 얹혀서 25현 가야금도 나왔습니다. 이렇게 현이 늘어나는 것이 꼭 좋은 점만 있지는 않습니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가야금이 20현이 넘으면 7음계로 넘어갑니다. 21현이라도 7음계를 쓰면 3옥타브밖에 되질 않습니다. 저는 17현 가야금까지 사용합니다. 5음계를 사용하기 때문에 15줄로 3옥타브가 가능하죠. 음역으로 보자면 21현이나 15현이나 같습니다.

5음계를 고르면 국악의 맛이 더 삽니다. 20현이 넘어 7음계가 되면 서양악기처럼 되죠. 그래서 저는 20현 넘는 가야금으로는 곡을 쓰질 않았습니다.

옛 장인이 만든 가야금과 요즘 제작하는 가야금의 차이가 있나요? 

가야금 제작자 고흥곤(중요무형문화재  48호) 씨의 스승이 김광주 선생입니다. 또 김광주 선생의 부친이 김명칠 명인이십니다. 세 분 모두 뛰어난 제작가지만, 김명칠 선생 초기작 가운데 유독 기가 막힌 가야금이 있습니다. 그 소리가 좋아서 저도 김명칠 가야금을 몇 대 보유하고 있습니다.

오래된 가야금일수록 소리가 좋나요?

푹 삭은 오동나무에서 나는 소리의 특색은 있습니다. 그렇지만 고금(古琴)이라고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오래된 것이라도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거나 관리가 부실하면 요즘 것만 못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좋은 악기를 판별할 때 제작 시기로 구분하기는 어렵습니다. 어떤 나무를 사용했는지, 어느 제작자의 손을 거치는지에 따라 소리가 달라진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바이올린 명기도 수명이 다하면 제소리를 잃습니다. 가야금에도 수명이 있습니까?

가야금도 수명이 다하면 소리를 잃습니다. 그렇지만 가야금 수명을 제대로 알기는 어렵습니다. 반면 일본은 전통악기 주제로 연구가 활발히 이뤄져 왔죠. 가야금과 유사한 고토(琴)의 예를 들자면, 많은 연구가 쌓여 악기 수명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임진왜란 시기에 만들어진 고토가 있다고 하시면 놀라시겠지만, 그보다 더 오래된 고토가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습니다. 고금의 표본이 많으니까 재료분석을 비롯해 다양한 데이터를 뽑아낼 수 있는 겁니다.

오늘날 오래된 가야금은 많지 않습니다. 과학적으로 접근하려는 시도도 적었고요. 앞으로는 국내 전통악기 수명을 비롯한 다양한 연구가 이뤄져야 할 겁니다.

동양권에 가야금과 유사한 악기들이 있습니다. 특히 중국의 쟁(箏)과 가야금은 유사한데, 현에서 차이가 납니다. 그 이유가 뭔가요?

가야금은 명주실을 사용하고, 쟁은 쇠줄을 사용하는 편입니다. 명주실이 내는 묘한 소리는 중국에서도 알고 있습니다만, 명주실은 연주 도중에 쉽게 끊어질 우려가 있습니다.

일본의 고토 역시 명주실을 사용하죠?

고토에 명주실을 쓰지만, 소리 내는 과정에서 가야금과 차이가 있습니다. 한국의 가야금은 손으로 현을 튕기지만, 일본의 고토는 가조(假爪)를 이용해서 소리를 냅니다. 현도 일본의 고토가 가야금보다 팽팽합니다.

 
 카린 나카자와의 25현 고토 연주 영상. 영상|유튜브 채널 ‘Karin Koto’

가야금 현을 조율할 때 젊은 시절과 지금의 차이가 있습니까?

아무래도 나이를 먹으면 힘이 떨어지니까, 그 시절보다 현을 미세하게 느슨하도록 조율합니다.

선생님께선 논어를 자주 언급하십니다. 

논어를 주제로 책*도 썼습니다.

* 황병기, 『가야금 명인 황병기의 논어 백 가락』(풀빛, 2013)

공자는 속세를 벗어나는 자세에 거리를 두는 입장이지만, 선생님 곡은 도가 느낌이 묻어날 때가 있습니다. 작곡하실 때 어떤 사상을 담으셨나요?

곡마다 다릅니다. 어떤 건 그림에서 악상을 얻고, 어떤 건 시에서 곡이 나옵니다. 쉽게 말해 제 음악은 곡마다 독특한 세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예기』(禮記)의 악기(樂記) 편을 빌려 질문을 드리자면, 음은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형식과 기교에 치중된 난잡한 음악을 망국지음(亡國之音)이라 했습니다. 어떤 음악인은 요즘 음악을 두고 이 말에 비유하던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와 달리 후배들은 20현 넘는 가야금으로 곡을 쓰고 연주를 합니다. 퓨전 음악도 하고 다양한 시도를 하죠. 제 만족과 별개로 그들의 예술적 아이덴티티를 존중합니다. 제 생각을 그들에게 강제할 수도 없고, 강제해서도 안 된다고 봅니다. 저는 제가 좋아하는 음악을 하면 그만입니다.

해금처럼 서양음악과 쉽게 어울리는 악기도 있습니다. 가야금도 다양한 시도가 늘고 있는데요, 이런 점을 고려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저는 퓨전 또는 크로스오버라 불리는 시도에 별 흥미가 없습니다. 프랑스에 가도 오센틱을 즐기고 퓨전 요리는 안 먹습니다. 어설프게 이것저것 섞어 놓으면 구미가 당기지 않습니다.

요즘도 작곡하시나요?

요즘은 뜸합니다. 작곡은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합니다.


황병기의 ‘미궁’. 영상|유튜브 채널 ‘CHANNEL CONCERTE’ 

창작하실 때 기획하고 구상하는 편입니까, 아니면 예술적 영매가 되어 영감을 받아서 작품을 만드시는 편입니까?

두 가지 경우에 다 해당하는데, 아무래도 영매처럼 곡을 쓰는 경향이 있습니다.

작품이 말을 걸듯이 찾아오나요?

꼭 그런 경우만 있는 건 아닙니다. 다양한 경로로 작품이 제게 찾아옵니다.

일정하게 이야기할 수 없지만, 곡 하나 쓰는 데 2년 정도 걸립니다. 그 정도 공을 들이면 뭔가가 옵니다. 막상 악보로 옮겨 적는 데는 2주면 됩니다.

교육자의 길을 걸으셨는데, 작곡도 가르치셨나요?

아니요. 저는 연주를 가르쳤습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저는 작곡을 제대로 가르치기 어렵다고 봅니다. 창작은 타고나는 점이 크거든요. 김소월 시인이나 서정주 시인이 문예창작과가 있어서 나왔겠습니까? 두 문인의 세계가 전혀 다른데 이걸 가르친다는 게 쉽지 않는 일이죠.

선생님의 가야금에서 재즈가 느껴진다는 평도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는 재즈를 좋아합니다.

2014년 말에 서울에서 에버하르트 로스(Eberhard Ross)가 제 음악에 바치는 회화 전시를 했습니다. 그분이 열렬히 심취하는 유이한 음악이 저와 키스 자렛(Keith Jarrett)의 곡이라 합니다. 에르하르트 로스가 제게 키스 자렛의 음반 세트를 선물해줬습니다.

키스 자렛 앨범을 들어 보셨나요?

키스 자렛도 보통내기가 아니었습니다. 전부가 즉흥 연주였는데 굉장했습니다. 아무래도 클래식보단 재즈와 국악이 악보와 실제 연주의 틈이 큽니다. 이런 면에서 재즈와 국악이 통한다고 여겨집니다.

국악의 즉흥적인 면은 어디서 주로 드러나나요?

국악에서 순수한 시나위는 연주자 자신도 무얼 연주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연주가 끝나고 똑같이 연주해보라고 하면 못 합니다. 시나위는 즉흥곡이면서 합주곡이기도 하죠. 그래서 재지(Jazzy)하다 느낄 수도 있습니다.

국악 애호가는 노령이 많습니다. 젊은 분들이 국악과 거리감을 좁히려면 어떤 게 좋을까요?

많이 듣는 게 제일 좋습니다.

다만 취미로 연주하는 것은 주의해야 합니다. 자기가 연습한 만큼 귀가 열리고 자꾸 비교하게 됩니다. 그때부터는 순수하게 즐기기 어렵죠. 또한, 가야금은 매일매일 연습해야 합니다. 힘겨운 과정이죠. 그저 귀족처럼 귀로 즐기시는 걸 추천합니다.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은?

나는 국악인이지만 국악을 더 내세우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그저 국악을 듣고 즐기시는 분들이 늘어나면 좋을 뿐이죠.